들어가며
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 법인 생활을 시작하면 "이 길의 끝에는 뭐가 있을까"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맴돕니다. 저도 수습 시절 새벽 택시를 타며 같은 고민을 했습니다. 10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, 각 단계마다 필요한 역량과 마음가짐이 달랐고, 그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좀 더 전략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.
이 글은 제 개인적인 경험과 주변 선후배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, 회계사의 커리어 단계별 특성과 핵심 역량을 정리한 것입니다.
1단계: 수습 회계사 (1~2년차)
수습 시절은 모든 것이 처음입니다. 감사조서를 쓰는 법, 클라이언트에게 자료를 요청하는 법, 심지어 인쇄기 사용법까지.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기를 다지는 것입니다.
이 단계에서의 핵심 역량:
- 회계 기준서 이해: 교과서에서 배운 이론을 실무에 적용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. 특히 수익 인식, 금융상품, 리스 등 핵심 기준서는 조문 단위로 숙지해야 합니다.
- 엑셀 활용 능력: 피벗테이블, VLOOKUP, INDEX-MATCH 정도는 기본입니다. 여기에 매크로나 파워쿼리까지 다룰 수 있으면 업무 속도가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.
- 커뮤니케이션 기초: 자료 요청 메일 하나도 명확하고 정중하게 쓰는 연습이 필요합니다. 클라이언트와의 소통 방식이 팀 전체의 효율에 영향을 미칩니다.
솔직히 이 시기에는 야근이 많고 체력적으로 힘듭니다. 하지만 이때 형성되는 업무 습관이 이후 커리어를 좌우한다는 점을 기억하세요. 조서를 대충 쓰는 습관은 시니어가 되어서도 고치기 어렵습니다.
2단계: 시니어 / 인차지 (3~5년차)
인차지가 되면 감사의 실질적인 책임자가 됩니다. 감사팀을 이끌고, 감사 계획을 수립하며, 주요 이슈를 판단해야 합니다. 수습 때와는 완전히 다른 역량이 요구됩니다.
이 단계에서의 핵심 역량:
- 프로젝트 관리: 감사 일정, 인력 배분, 마감 관리 등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능력이 핵심입니다. 여러 개의 감사를 동시에 진행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우선순위 판단이 중요합니다.
- 전문적 판단(Professional Judgment): 더 이상 매뉴얼에 없는 문제를 남에게 물어볼 수 없습니다. 기준서를 근거로 스스로 판단하고, 그 판단을 문서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.
- 주니어 육성: 후배를 가르치는 것은 자신의 지식을 체계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. 좋은 인차지는 단순히 일을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, 후배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사람입니다.
- 클라이언트 관계 관리: CFO, 경리팀장 등 클라이언트 핵심 인력과의 관계가 감사의 품질과 효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.
이 시기가 커리어의 전환점입니다. 법인에 남을지, 기업으로 이직할지, 다른 분야로 전환할지 고민이 깊어지는 때이기도 합니다.
3단계: 매니저 (6~8년차)
매니저는 여러 프로젝트를 총괄하며, 파트너를 보좌하는 역할을 합니다. 기술적 전문성보다는 관리 역량과 비즈니스 감각이 더 중요해지는 시기입니다.
이 단계에서의 핵심 역량:
- 품질 관리(Quality Control): 감사 품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이 매니저의 가장 중요한 책임입니다.
- 영업 및 제안: 신규 클라이언트 확보를 위한 제안서 작성과 프레젠테이션에 참여하게 됩니다.
- 산업 전문성: 특정 산업(금융, 제조, IT 등)에 대한 깊은 이해가 차별화 요소가 됩니다.
- 리스크 관리: 감사 위험을 사전에 식별하고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능력이 요구됩니다.
4단계: 그 이후의 선택
파트너로의 승진을 목표로 할 수도 있고, 기업의 CFO나 내부감사 임원으로 이직할 수도 있습니다. 스타트업에 합류하거나, 자문 회사를 창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. 중요한 것은 어떤 경로를 선택하든 그 전까지 쌓아온 역량이 기반이 된다는 점입니다.
후배 회계사들에게
커리어에 정답은 없습니다. 다만 몇 가지 조언을 드리자면:
- 기록하세요: 감사 경험, 발견한 이슈, 배운 점을 정리해 두면 나중에 큰 자산이 됩니다. 블로그든 노트든 형식은 상관없습니다.
- 네트워크를 쌓으세요: 같은 기수 동기뿐 아니라, 다른 법인, 기업 쪽 사람들과의 교류가 시야을 넓혀줍니다.
- 전문성을 깊게 파세요: 제너럴리스트도 좋지만, 적어도 한 분야에서는 "이 사람에게 물어보면 된다"라는 평판을 만드세요.
- 건강을 지키세요: 비지 시즌에도 운동 루틴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세요. 체력이 무너지면 판단력도 무너집니다.
회계사라는 직업은 고되지만, 그만큼 다양한 기업과 산업을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. 각 단계에서 최선을 다하되, 장기적인 시야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.